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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고향의 톨게이트 근처에 도달했습니다. 톨게이트는 폐쇄되어 있고, 도시는 자욱한 안개 속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고향이 봉쇄되었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습니다. 도시 전역이 흰개미 피해를 보고 붕괴위험지역으로 지정된 것입니다. 대피 명령을 따른 이재민들은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밤낮을 보내고 있습니다. 확성기는 사이렌을 울리며 도시 방향으로 신속한 대피를 요청합니다. 당신은 오래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떠나야 할 때 비로소 돌아온 까닭은 급히 떠난 자리에 뒹굴고 있을 값비싼 물건을 챙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연구자로서 이 변종 흰개미에 매료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구해야 할 사람이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건 당신의 고향이 당신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 오래 묵은 모독과 투기를 반복하기 위하여 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돌아가는 길을 잊지 않도록, 지도 위에 발자국을 눌러 찍습니다. 고향이라는 미궁, 개미굴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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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개요
본 전시에서는 전시관에 설치된 게임 맵을 새로운 지도로 덧씌우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관객들은 전시관에 제공되는 지도에 얽힌 이야기를 TRPG의 형식을 활용한 연극적 대화를 통해 체험하고, 공동 창작자이자 플레이어가 되어 함께 지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퍼포먼스 개요
작가는 게임 마스터, 관객은 플레이어가 되어 함께 대화형 게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을 일대일 형식으로 플레이한다.
플레이어는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는 지도에 플레이의 흔적을 남기면서, 게임 마스터와 함께 경합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플레이어는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는 지도에 플레이의 흔적을 남기면서, 게임 마스터와 함께 경합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장소: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5가 4, 지하 1층 팩션
일자: 6월 14-16일, 21일-23일 / 금,토,일 진행
소요시간: 1시간 30분
일자: 6월 14-16일, 21일-23일 / 금,토,일 진행
소요시간: 1시간 30분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와 공동의 지도 제작
본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는 전시관에 설치된 게임 맵을 새로운 지도로 덧씌우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관객들은 전시관에 제공되는 지도에 얽힌 이야기를 TRPG의 형식을 활용한 연극적 대화를 통해 체험하고, 공동 창작자이자 플레이어가 되어 함께 지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TRPG는 테이블 토크 롤플레잉 게임(Table Talk Role Playing Game)의 약자다. TRPG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은 공동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목표 아래에서 자신이 만든 가상의 역할을 느슨하게 연기한다. 게임의 진행자인 GM(Game Master)이 큰 줄기의 이야기를 이끄는 한편, 플레이어들은 그 이야기를 재료 삼아 자신이 맡은 가상의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를 상상해 발화한다. TRPG는 승패나 고투보다는 모두가 참여하는 이야기의 창조, 혹은 그러한 공동의 이야기 창작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을 장르적인 목표로서 더 우선시한다. 하지만 이때의 ‘공동’의 테이블은 플레이어가 모두 대등한 지분을 갖는 원탁은 아니다. 우리는 TRPG의 테이블을 규칙에 따라 비대칭적인 역할과 개입의 능력을 받고서 설득의 과정을 펼쳐 나가는 직사각형의 테이블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퍼포먼스에서 이러한 TRPG의 형식을과 지도를 접목시키는 까닭은, 지도가 언제나 공동의 정치, 공동의 힘의 대결과 공동의 합의를 연루시키는 공동의 이야기로부터 그려지고 또 수정되는 현실에 대한 도상적 재현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공동’과 ‘현실’ 역시 다종다양한 힘의 관계를 통하여 비대칭적으로 구성된다.
물리적인 기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서 비언어적이고 언어적인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TRPG도 여전히 ‘지도’만은 테이블의 중앙에 놓고서 사용하는 경우가 잦다. 그 지도는 플레이어들의 위치를 확인하는 용도를 넘어서, 잠재적인 위험과 새로운 조우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힌트가 어디 있는지, 그리고 그 공간에 대한 어떤 정서적인 반응과 개입을 상상할 수 있을지와 같은 창작의 마중물이 된다. 지도는 그들이 함께 모험을 전개하며 공간이 변화되는 경험과 공간에 자취를 남기고 그 자취를 감지하는 경험을 즉흥적으로 연출하는 수단이다. TRPG의 지도는 일반적인 지도와 닮은 기능적이고 간략한 외관을 하고 있을지라도, 이미 완료되고 주어져 있는 소위 ‘현실’의 대변자이기를 자처하지 않고, 공간을 인식하는 틀 자체를 형성하는 담론적 담화 속에 위치한다. 본 작업은 공동의 픽션을 만들어 나가는 공동의 기반이 되는 지도와 그 지도를 경유해서 생성되는 이야기를 주목하며, 이 지도를 생성해내는 과정 자체가 미학적인 경험이 되도록 만든다.
퍼포먼스는 현실주의적인 지도가 전면화하지 않는 힘과 환상의 관계가 TRPG의 지도에서는 전면화되는 차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퍼포먼스 상에서 TRPG의 GM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작가와 함께, 참여 관객은 공간적 차원에서 펼쳐지는 것으로 형상화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진행 방향에 따라서 전시관의 가벽을 따라 설치될 거대한 지도를 수정하고, 덧씌우고, 발걸음으로 물들인다. 그리고 다음 관객은 조금씩 수정된 지도 위에서 수정된 지도가 새롭게 제공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쌓는다. 이때 이야기가 만들어낸 새로운 지리 관계를 대변하기 위하여 스티커와 펜을 활용하여 지도를 첨삭할 것이다. 지도는 인간의 도시에 ‘침투’한 흰개미에 의해 벽과 교각이, 그리고 바닥이 허물어져 가는 허구적 ‘고향’을 배경으로 한다. 이 ‘고향’은 낯이 익은 형식의 지도가 누락한 붕괴, 함몰, 폐허와 비인간 존재들의 정서적인 침투로 가득 차 있다. 참여 관객이 분하는 캐릭터는 이 공간을 가로질러 간다. 그의 체험을 반영하도록 지도는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수정된다. 결과적으로 그 지도는 플레이어들의 이야기가 침투하는 지층으로 변모한다. (성훈)